인도 15

아쉬운 마무리

온라인이지만 시간이 가니 학기도 바뀌었다. 새 학기 즈음에 으레 맞는 이 기분. 우선 학생들이 궁금하고 지난 학기의 후회와 아쉬움을 딛고 새로 감당해야 할 각오와 다짐 그리고 적절한 나름의 원칙 같은 것들이 있다. 여기까지가 내가 겪었던 일반 사회의 학기 전 현상이다. 그러니 새 학기를 맞는 느낌은 늘 이렇게 새로운 각오와 희망, 그리고 기대가 절대적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르다. 가르쳐야 할 대상의 윤곽. 새 학기 시작 겨우 2주 전이라야만 나는 내가 전념해야할 수업의 범위를 더듬더듬 알 수 있다. 그 2주부터는 부리나케 수업 준비를 할 수 있다. 그 전에 그것을 묻는다면 경을 칠 노릇이 된다. 여기 온지 1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교원의 희망 사항조차 묻는 법이 없었다. 어찌하여 난 중급 주중반과 고..

인도 2022.05.10

아직은 이해 곤란한 나라

65가 넘은 나이에 겪은 나의 인도 생활은 참으로 귀중한 체험이었다. 가끔 남은 인생을 돌아보고 살아가는데 꽤 많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보통 사람이 겪지 않은 체험을 난 이제 몇 개 더 가진 셈이 된다. 그래 부자가 되었다. 내가 겪은 인도의 이미지는 대충 이렇다. 일할 수 있는 인구는 많지만 폐쇄적인 카스트의 굴레 속에서 속절없는 유리 천장에 갇혀 지내는 사람이 더 많은 나라. 그렇게 유지되어온 사회적 인습과 구조. 수천 년 지속되어온 신에 대한 믿음 속에서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살아가다 대를 이어가며 똑 같은 생활을 되풀이하는 기층민들의 안타까운 삶들. 같이 살아보며 삶에 대한 생각을 나눠본 적은 없었지만 나 같은 이방인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대체로 그런 저런 이유로 슬프게 비쳤다. 쉽게 ..

인도 2022.05.10

예측불허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온 가장 중요한 파장 중의 하나는 ‘예측불허’일 듯싶다.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일은 예측불허이다. 인류가 수렵채집을 거두고 농경을 위해 본격적으로 집단 거주를 시작한 지 만 년 남짓. 모여 살다보니 자연스레 이루어진 온갖 토론과 협동을 통해 꾸준히 발전해왔고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과의 접목으로 빠른 속도의 기술혁신을 이루고 AI와 빅 데이터 기술, 그리고 사물 인터넷으로 응축된 4차 산업혁명으로 성큼 다가섰다고 떠들어 댄지가 바로 엊그제인데 우리는 그 빅 데이터 기술을 가지고도 예측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나의 이곳 생활 역시 예측불허의 사태에 직면한 것이다. 나의 인도 생활을 예측할 수 있는 척도가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는, 우선 건강과 안전이었고 지금도 역..

인도 2022.05.09

더위

요즘의 더위는 한국에서 맞는 더위완 본질적으로 다르다.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면 확 엄습하는 열기가 온 몸을 감싼다. 보통 37도를 넘기니 건식 사우나에 막 들어온 것과 같다. 조금만 걸어도 이내 땀이 맺히고 겨드랑이와 등줄기가 금방 젖는다. 한 낮이 되면 보통 42도에서 45도까지 올라간다. 아직까지는 건기에 속하니 그래도 견딜 만하단다. 그러나 나에겐, 용광로 속처럼 따가운 이 햇살부터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다 보니 7월부터 본격적으로 들이닥칠 몬슨의 무더위는 또 어떤 얼굴로 나에게 다가올지. 한국도 지금은 장마가 시작되는 계절이라니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에도 자연의 변함없는 질서는 세계 곳곳에서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덤덤한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오늘은 수요일이지만, 평일처럼 재택..

인도 2022.05.09

시스템1

lockdown이 시작된 지 3달이 다 되어간다. 현재 인도의 확진자 증가 추이가 수그러들지 않는다. 하루에 만 명 안팎으로 늘어가며 현재까지 30만 명에 육박하는 수준이니 전체 13억 인구를 감안한다면 아직도 그래프의 끝은 그대로다. 꺾이질 않는다. 거기다 이 나라의 통계가 정말 믿을만한가. 도로 위의 차량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더불어 공기 오염도 예전 수치와는 아직도 차이가 있으나 200을 넘길 때도 많다. 학당에 일이 있을 때 오며가며 살펴보면 소상공인과 개인 샵은 이미 대부분 문을 열었다. 문화원 내 '달그락' 식당도 이제 정상 영업을 한다. 국민 대부분이 먹고 살기 힘든 나라가 3개월 동안 모든 교류를 끊어놨으니 그들의 살림살이가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이제 교통이 복구되면 그 이후를 어..

인도 2022.05.09

수업2

내 수업이 어렵다며 주말반의 한 학생이 반을 바꿔주거나 수업료 환불을 요청해왔다. 문화원에서는 내부 결정을 거쳐 환불해주기로 했다며 내게 관련 이메일을 보내왔다. 전화 한 통 없이 메일 하나가 비수처럼 내 가슴으로 쑥 들어와 꽂힌 것이다. 전혀 협의되지 않은 결과를 이렇게 갑자기 통보받았다. 그렇게 첫 전갈을 받는 순간 무너져 내리는 자존심으로 많이 아팠지만 이내 추슬러야했다. 아픔만을 붙안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밤 10시 반이 넘는 순간에 우연히 확인한 메일을 두고 어떻게 해야 그 아득해진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인가. 당연히 잠을 이룰 수는 없었다. 사전 얘기가 없었다는 사실을 두고 이해하려고도 많이 노력했다. 이런 일이 물론 없지는 않았겠지. 어쩌면 많을지도 몰라. 그러니, 반을 ..

인도 2022.05.09

인도는 수압이 약한 나라다. 내가 알고 있는 인도였다. 처음 와서부터, 문화원에서 2주간 제공한 3성급 호텔의 샤워기 물도 그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수도에서 나오는 물도 그랬다. 항상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것이 지금의 인도를 상징하는 듯했다. 먼저 와있던 파견교원들 역시 수압 문제를 거론하며 인도의 물 문제를 그렇게 일축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단서는 조금씩 나를 흔들었다. 삶은 계란은 빵과 커피와 더불어 나의 오래된 아침 식사 메뉴이다. 그래서 전기만 꼽으면 바로 가동을 시작하는 ‘계란 삶기’를 구입하여 지금껏 잘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계란 삶기’의 밑바닥에 하얗고 두껍게 침전되어 있는 석회덩어리를 발견했다. 넓적한 집개를 이용해서 한참을 긁어내니 대부분은 벗겨낼 수 있었으나 원..

인도 2022.05.09

인터넷

오늘은 온라인 수업이 있는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인터넷 실내 라우터에 노란 불이 들어와 있다. 인터넷 연결이 안 되고 있다는 신호다. 스위치를 껐다 다시 켜고를 몇 번이고 반복해봤지만 노란 led 신호는 움쩍달싹도 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마지노선은 이미 정해져 있다. 문화원 인터넷 가동되는 사무실에 가서 수업은 하면 된다. 아직 2시간 전이므로 1시간은 기다려보기로 했다. 여기 와서 보니 한국을 왜 세계 1위의 인터넷 국가라고 떠들어대는지 그 이유가 설명된다. 수업을 하다보면 20여 명의 학생들이 지역에 따라 다른 인터넷 사정으로 수없이 들락날락한다. 보통 1/3의 학생들이 휴대폰으로 수업에 임하는데, 종료 시 확인해보면 휴대폰 참가 학생의 대부분은 이미 나가 있는 경우가 많다. 모바일 핫스팟으로..

인도 2022.05.09

끄뜹 미나르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마침내 WHO가 코로나 바이러스-19를 팬데믹 현상으로 규정했다. 시간이 갈수록 인류가 정체모를 대상과 전쟁을 하고 있으며 인류는 점점 더 힘든 국면을 맞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끔 찾아오는 간헐적인 악몽 사이에서 의미 없는 죽음도 찾아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제였다. 악몽은 늘 두려움과 공포를 몰고 왔다. 왜 죽음은 공포를 동반하나. 거부하면 두려운 거고 받아들이면 그렇지 않은 법이다. 10여 년 전 중국에서의 큰 수술을 앞두고는 내 자신이 던지는 스스로의 통렬한 비난이 더 크게 자리 잡았다. 그때도 공포는 있었지만, 무책임했던 과거를 더 책망했다. 죽음을 생각하니 제일 힘든 것이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이었다. 비로소 나의 무책임을 알게 된 것이다. 비난으로부터 시작된..

인도 2022.05.09

살림 장만

세라젬은 도심에서 떨어진 신도시 공단 쪽에 위치해 있었다. 고속도로를 경유해야 했으므로 이른 아침 35분 정도 되니 도착했다. 영어와 한국어를 절반씩 섞어야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자음과 모음 즉, 예비 편부터 다시 해야 할 정도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국어에 가장 많이 출현하는 연음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니 발음이 엉망이었고 그런 발음 습관으로는 말하는 것도 느리고 hearing도 어려웠다. 수업이 끝나고 팀장 면담이 있어 사실대로 얘기하니 난감해한다. 내가 3번째 선생님이란다. 한국어 공부 시작 1년 만에. 왜 그런 습관이 들게 되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예비 편부터 다시 할 생각은 없다. 그들도 자존심이 있을 테니까.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인도의 끔직한 교통 상황을 그대로 대변..

인도 2022.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