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늦깎이1 2022. 5. 9. 12:00

인도는 수압이 약한 나라다.

내가 알고 있는 인도였다. 처음 와서부터, 문화원에서 2주간 제공한 3성급 호텔의 샤워기 물도 그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수도에서 나오는 물도 그랬다. 항상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것이 지금의 인도를 상징하는 듯했다. 먼저 와있던 파견교원들 역시 수압 문제를 거론하며 인도의 물 문제를 그렇게 일축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단서는 조금씩 나를 흔들었다. 삶은 계란은 빵과 커피와 더불어 나의 오래된 아침 식사 메뉴이다. 그래서 전기만 꼽으면 바로 가동을 시작하는 계란 삶기를 구입하여 지금껏 잘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계란 삶기의 밑바닥에 하얗고 두껍게 침전되어 있는 석회덩어리를 발견했다. 넓적한 집개를 이용해서 한참을 긁어내니 대부분은 벗겨낼 수 있었으나 원상회복은 힘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인도의 물에 대해 탐색해봤다. 교민들이 올린 간헐적인 게시물을 통해서도 능히 다량의 석회질을 함유한 인도의 물 문제를 엿볼 수 있었다. 언급된 정도는 내가 경험했던 유럽이나 중동 국가보다도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정수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세척이나 빨래 물도 가급적 이 정수기 물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무지와 부주의에 겁이 덜컥 났으나 그래도 식수는 특별히 신경 써가며 음용해왔다는 지난 얼마간의 생활로 애써 위안을 했다.

 

어딜 가나 여행 첫 날부터 만지게 되어있는 것이 수도꼭지다. 호텔에 있던 수도꼭지와 같이 2단 꼭지가 문화원 화장실에도 있었고 집에서도 그렇다는 것을 기억해낸 순간, 유레카를 외치며 목욕탕에서 뛰쳐나왔던 아르키메데스처럼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2단 꼭지의 끝에 있는 원형 나사가 쉽게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한참 힘들여봤더니 천천히 움직여주었다. 한 눈에, 물이 왜 그렇게 찔끔찔끔 나왔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바로 그 끝이 석회 필터관이었다. 물에 함유된 석회질이 쌓여 통로를 막으니 그렇게 찔끔찔끔 나올 수밖에. 난 핀을 이용해 관에 미세하게 뚫려 있는 작은 구멍들을 헤집으며 막힌 대부분을 뚫어냈다. 필터관을 원래대로 돌려 넣고 물을 틀었다. 치익. 와르르. 예상하지 못해 쌓아 두었던 그릇들이 힘찬 물줄기를 받고 무너져 내렸다. 그렇다면 아마도 집 앞 편의점이나 철물점에서 규격화된 수도꼭지의 필터만을 따로 팔기도 할 것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가정과 검증 확인에 대한 가벼운 희열이었다. 그랬었지. 젊은 시절에는 이처럼 번뜩이지 않으면 뒤쳐질 수밖에 없었지. 퇴직 후 느슨해져 있는 나의 직관과 무감각을 애써 세월 탓으로 돌리며 쓴 웃음을 날리는 순간, 후두둑 소리와 함께 한바탕 몰아칠 스콜이 시작되었다. 애쓰지 마, 그래도 돼. 자꾸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물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더 있다. 건기에 속하는 요즈음은 아침부터 내리 꽂히며 대지를 달굴 열기가 더운 바람을 타고 주변을 사막화하는 형태를 보인다. 락다운으로 행정 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펀잡 지방으로부터 불어 온 지저분한 모래 무더기가 도시 곳곳을 쓸고 다닌다. 대부분을 집에서 갇혀 지내지만 주변에 나갈 때는 아주 곤혹스럽다. 아침부터 체온보다 높은 온도로 시작하니 한 낮은 당연히 40도를 훌쩍 넘는다. 한국 같으면 오늘도 폭염이었다면서 올 들어 최고치 경신 운운의 뉴스로 시끄러웠을 것이다. 오늘도 과일을 사러 집 주변 행상을 찾았다. 45도가 넘는 바람이 온 몸을 감싸며 흙먼지를 일으킨다. 가급적 빨리 볼 일만 보고 얼른 돌아오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모든 게 여유롭다. 날마다 가격이 오른다. 흥정을 주로 하는 나라라고 알았지만 이제 그것도 생략한지 오래다. 계산을 치루고 그 짧은 거리를 오는 데도 땀이 쏟아진다.

 

이 대목에서 물 이야기를 해야겠다. 사과와 바나나를 샀다. 한국 사과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은 크기로 6개를 사와 저장을 위해 씻기 시작한다. 두 꼭지로 구분된 수도 파이프 중 습관처럼 냉수도인 오른 쪽 레바를 돌리다 말고 이내 온수로 바꾼다. 최근에 안 사실이다. 옥상에 놓인 물탱크가 하루 종일 뜨거운 태양 아래 달궈졌다가 저녁이면 약간 식지만 다시 다음 날의 계속된 폭염으로 수온이 내려갈 줄 모르고 30도 가까이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순간 보일러를 거치도록 되어 있는 온수 파이프는 집안에 연결된 길이만큼 20도 정도의 실내 수온이 유지된다. 그러나 이 단비와도 같은 냉수 역시 얼마가지 않아 뜨거운 물탱크 온수와 연결되고 만다. 아마도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고급 아파트의 물탱크는 반드시 지하에 설치되었을 것이다. 당초 계획과 다르게 살아가야 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일상생활이 가변적이거나 설명 없이 따라야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듯싶다. (20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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