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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산동마을

산수유는 잎보다 먼저 샛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면서 이른 봄을 알린다. 하나씩 터지는 망울 속에 감췄던 4개의 총포조각이 열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각각의 조각마다 4개의 수술대들이 고개를 쳐들고 찬란한 생애를 준비한다. 손톱만한 작은 꽃들이 20~30개씩 모여 우산모양의 군집을 이룬다. 그런데 그 20~30개의 꽃들이 다 암수 양성이다. 그래서 10월이 되면 가지마다 무수히 매달린 빨간 빛의 산수유 열매를 수확하느라 산동마을은 북새통을 이룬다. 엄청난 크기의 산수유 열매를 머리에 이고 있는 산수유문화관에서 왼편으로 끼고 돌며 조성된 산수유사랑공원 주변은 아직도 노란 꽃잎들로 풍성하다.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김 훈의 「자전거 여행」에 등장하는 이 한 문장은 산수유 꽃을 묘사한 수..

카테고리 없음 2023.03.31

금성산성

담양 금성산성은 보이는 것처럼 난공불락의 요새다. 주봉인 600m의 금성산을 중심으로 고만고만한 다른 4개의 능선을 따라 7km에 달하는 외성으로 축성되었고, 그 안에 또 800m 규모의 내성까지 겹으로 구축된 입보산성이다. 분지처럼 움푹 꺼져 들어앉은 지대를 중심으로 조성한 내성에는 사철 마르지 않는 샘이 7군데나 있어 식량만 확보된다면 수천 명이 장기간 생활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실제로 몽골군이 쳐들어 왔을 때 이곳 주민들은 금성산성에 들어가 오랫동안 항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산기슭에서 100m 정도 오르니 평일이라 한적해진 주차장에 차를 두고 드디어 산행을 시작했다. 잘 다듬어진 맹종죽 숲을 오른쪽으로 끼고 100m 정도를 더 오르니 꽤 넓은 평지가 나왔다. 얼핏 우거진 숲 사이로 난 오..

카테고리 없음 2023.03.06

월봉서원

광주에서 광산 비아를 거쳐 황룡강을 끼고 장성 쪽으로 가다보면 廣谷마을이 나온다. ‘넓은 계곡’이란 뜻 그대로 산 밑으로 전개되는 너른 평지에 강이 흐른다. 여기에 월봉서원이 자리한다. 광주가 낳은 조선 성리학의 대가 고봉 기대승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원래 비아의 망천사에 있던 위패를 인조 때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효종 때 ‘월봉’으로 사액되었다. 그러는 과정에 박상, 박순, 김장생과 김집 등이 추가 배향되었다. 월봉서원의 위세가 어땠는지 짐작된다. 기대승은 익히 아는 바처럼, 퇴계 이황과의 사단칠정을 주제로 한 편지 논변이 유명한 바, 이때 퇴계는 58세, 그리고 고봉은 32세였다. 당시 조선 성리학의 대가였던 퇴계는 신예 고봉의 논박을 내치지 않았다. 예의를 갖춘 논리가 진정한 학자를 오히려 끌..

카테고리 없음 2023.02.16

담양 학구당

조선시대의 담양에는, ‘학구당’이라는 사립교육기관이 있었다. 다른 지역의 서원이나 서당과 같았지만, 특정인의 학풍을 본받도록 주입하지 않았고 주로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곳이었다. 당연히 급제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광주에서 고서로 들어와 광주호 댐에서 왼쪽 고샅길로 방향을 틀어 오르면 바로 수남학구당이 나온다. 소쇄원, 환벽당, 식영정을 끼고 도는 증암천에서 가사문학이 탄생되었고, 그 증암천을 기반으로 인공호수를 조성했으니 넓은 들판과 만나는 바로 그 초입에 학구당이 생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듯도 하다. 가깝게 보이는 무등산의 옆얼굴도 그런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창평읍에서 가까워 창평학구당이라고도 불렀다. 선조 때 지역의 25개 성 씨가 힘을 합쳐 창립했으며 과거 합격자나 지역 명문가들이 교재와 학사규..

카테고리 없음 2023.02.08

엘도라도의 낙조

엘도라도 리조트에 왔다. 언어치료심리센터를 개설해 갑자기 바빠진 큰 애가 설날 이틀을 남겨두고 연락을 해왔다. 이번은 언젠가 가봤던 증도에서 설 휴가를 보내며 새해를 맞고 싶다는 거였다. 우리도 찬성을 했고 그래서 단촐하지만 큰 애 가족과 막내 그리고 우리 부부까지 서울에서, 청주에서 그리고 광주에서 승용차 두 대로 나눠 타 귀성행렬의 긴 꼬리를 물며 이곳 엘도라도에 도착했다. 다섯 시를 넘겨 체크인을 했던 관계로 일몰까지는 시간에 여유가 없었다. 급히 드론을 챙겨 골든 비치의 마지막 태양을 맞았다. 갯내음을 실은 찬바람이 황혼녘의 해변을 황금빛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 밀물 시간이었던지 끊임없이 들이미는 조수의 잔잔한 물결이 역광을 받아 물고기 비늘처럼 음영을 남기며 반짝거렸다. 일몰은 아직..

카테고리 없음 2023.02.08

너릿재 옛길

너릿재에 다시 올라왔다. 무등산의 옆얼굴이 늘 궁금했었다. 거기에다 너릿재는 무등산국립공원의 범주에 속하는 곳이기에 이곳에서 드론을 높이 띄우면 정상까지 죽 산등성이 연결된 장엄한 모습을 관찰 할 수도 있겠다는 혼자만의 강한 추측이 들었었다. 그걸 확인해보고도 싶었다. 지금 드론은 화순에서 올라와 240m 너릿재 정상의 판치(板峙)를 빙 둘러본다. 좁고 비탈진 도로를 30분 정도 걸어 올라오면 넓고 평탄한 고개에 이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화장실도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이래 빵빵해진 예산 덕인지 무방류 비수거의 친환경 화장실로 바뀐 지 오래다. 세종 때 전라도관찰사와 판서를 지낸 성임(成任)이 광주를 짧게 칭송한 한시의 일부가 시비로 우뚝 서서 600년을 노래하고 있다. 光山은 형세가 뛰어나 아름다운..

카테고리 없음 2023.01.13

미암박물관

미암박물관을 찾았다. 몇 해 전, 친구 따라 왔다가 ‘미암’이라는 명칭에서부터 아담하지만 정갈하게 관리되어지고 있던 박물관의 외형적인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허난설헌, 황진이, 매창과 더불어 조선 4대 여류시인으로 알려진 미암 유희춘의 아내 송덕봉의 예사롭지 못한 구절의 시비가 눈길을 끌었는데, 당시엔 다른 일정에 쫓겨 아쉬움만 잔뜩 안고 다음을 기약했었다. 그러던 게 오늘에야 날이 되었다. 미암 유희춘은 해남 사람으로 전라도 관찰사와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을사사화 때, 제주도와 종성에 19년간의 유배생활을 하다 선조 즉위와 함께 해배되어 다시 등용되었다. 그때부터 기록했던 ‘미암일기’와 ‘미암집 목판본’이 국가문화재 보물 260호로 지정되어 오늘날 미암박물관으로서의 성가를 빛내고 있다. ..

카테고리 없음 2022.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