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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산동마을

늦깎이1 2023. 3. 31. 07:28

 

 

 

산수유는 잎보다 먼저 샛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면서 이른 봄을 알린다. 하나씩 터지는 망울 속에 감췄던 4개의 총포조각이 열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각각의 조각마다 4개의 수술대들이 고개를 쳐들고 찬란한 생애를 준비한다. 손톱만한 작은 꽃들이 20~30개씩 모여 우산모양의 군집을 이룬다. 그런데 그 20~30개의 꽃들이 다 암수 양성이다. 그래서 10월이 되면 가지마다 무수히 매달린 빨간 빛의 산수유 열매를 수확하느라 산동마을은 북새통을 이룬다.

 

엄청난 크기의 산수유 열매를 머리에 이고 있는 산수유문화관에서 왼편으로 끼고 돌며 조성된 산수유사랑공원 주변은 아직도 노란 꽃잎들로 풍성하다.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김 훈의 자전거 여행에 등장하는 이 한 문장은 산수유 꽃을 묘사한 수많은 글들 중 압권으로 꼽힌다. 내가 아는 한 그렇다는 얘기다. 산수유 꽃 한 송이는 매화나 동백, 그리고 벚꽃처럼 매혹적으로까지 다가오지는 않지만 무리지어 서있는 산수유나무는 아찔한 꽃 멀미를 선사한다.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똑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주변의 어디를 둘러보아도 아직까지 노란 꽃잎을 달고 있는 산수유 꽃 무더기가 정말 감사하다. 축제 기간에 왔다가 몰려드는 인파 때문에 주차할 곳이 없어 서성대다가 갖고 간 드론 탓으로 돌리며 쓸쓸히 차를 돌려야 했던 얼마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제라도 찾아 온 것을 크게 자축했다. 하지만 벌써 대부분의 나무들이 연두색 이파리를 달기 시작한 때문에 특유의 샛노란 꽃잎들의 향연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유일한 흠이 되었다. 어쩌랴. 산동애가의 서글픈 역사를 담고 있는 산동마을의 산수유 꽃은, 그처럼 찬란한 꽃 잔치만으로 그쳐서는 안 되는 것을.//공원 한 가운데 커다랗게 자리한 노란 산수유 꽃 조형물은 새로 조성한 듯, 코로나-193 년간의 긴 공백을 깨고 무수한 인파를 끌어 모으는 축제장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드론이 고도를 서서히 높여 올리자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게 텅 빈 주차장이다. 얼마 전 왔을 때 저기에 한 자리 주차할 곳을 찾느라 30분 이상을 돌고 돌며 얼마나 애가 탔던고. 분명히 두세 대의 차가 나가는 것을 알고 빙빙 돌아 근처에 이르면 이미 솜씨 좋은 선착자의 몫이 돼버렸던 공간들. 그 많던 인파가 썰물처럼 왔다 가고 지금은 축제의 여운을 아직 다 삭이지 못한 듯 한둘의 리어커 행상만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는 이곳은 적막감마저 감돈다. 한계짜증체증의 법칙이 적용되었던 축제장의 주차장이 지금은 한계적막체증의 법칙으로 이름만 바뀌며 그 효용성을 검증 당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전국에 열풍처럼 휘몰아치고 있는 지자체들의 축제장 모두가 다 이런 현상인데, 인구절벽과 맞물려서 떠날 수밖에 없는 이농의 현실은 이미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어서 씁쓸한 뒷맛이 영 개운치가 못하다.//그런 나의 기분을 떨쳐내려는 듯, 드론은 벌써 지리산의 수려한 풍광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마을을 시원스럽게 날고 있다. 상위마을과 하위마을, 그리고 반곡마을을 구석구석 비추며 이제 끝물이 되어가는 산수유의 마지막 향연을 마음껏 즐긴다. 마을의 어디라도 줌인을 하면 지천으로 피어있는 산수유가 흐드러졌다. 산등성이에서부터 개울가 양지바른 언덕에도, 돌담길에도, 장독대에도 노란 빛의 시린 꽃 잔치를 아무렇게나 허용한다. 이제 선을 보이기 시작하는 흰 벚꽃과도 잘 어우러진다. 산수유 꽃의 노란 빛이 사라지면 연두색 잎사귀가 무성해질 것이고 점차 초록색으로 바뀌며 이곳 산천의 본격적인 봄을 견인할 것이다.//지리산 쪽으로부터 봄나들이를 마친 승용차들이 마을 입구 쪽을 향해 돌아가는 모습이 간혹 관찰된다. 빠른 속도이다. 그들은 불과 십여 일 전의 심각한 교통체증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나?//다시 공원 위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노란 산수유 꽃의 큰 조형물을 줌인해본다. 국내법상 드론을 올릴 수 있는 최고 높이 150m에서 8.5배로 당겨본 영상이니 그 크기를 상상해보시라.

 

사실 난 이곳 산동마을을 꽤 오래 전에 다녀간 적이 있다. 20년도 훨씬 전이었는데 지금처럼 차가 많지 않았던지 승용차로 여유 있게 상위마을까지 섭렵했었다. 그런데 그건 실수였었다. 섭렵은커녕 대충 눈요기만 하지 않았나싶다. 최근에야 산동애가의 설운 역사적 사실을 인지해서였다. 꼭 다시 찾아가 당시의 애틋하고 슬픈 회한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다 밀려든 인파로 헛걸음 했었고, 못내 아쉬워하다 언젠가 MBC에서 방영한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횡재하고는 차라리 다행으로 여겼다. 그리고는 이번에 다녀온 것이다.// 산동애가의 주인공인 백부전(백순례)은 당시 19세 꽃다운 나이였다. 큰 오빠는 징용으로 끌려가 죽고, 둘째 오빠마저 여순사건으로 처형당하자 토벌대에 쫓기는 셋째 오빠 대신 죽음을 자처한 그녀였다. 여순사건조차 날조한 마당에 대신 죽겠다고 나선 어린 처녀애를 대한민국 정부가 총살을 해버리다니. 백부전의 억울하고 슬픈 죽음을 들은 어느 퇴역 경찰이 노랫말을 지어 산동 사람들이 불러오다 군사 정부 시절 금지곡이 된 걸 어느 향토 가수가 다시 불렀다.//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열아홉 꽃 봉우리 피어보지도 못하고/까마귀 우는 골을 멍든 다리 절어절어/다리머리 들어오는 원한의 넋이 되어/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회오리 찬바람에 부모효성 다 못하고/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2023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