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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릿재 옛길

늦깎이1 2023. 1. 13. 12:56

너릿재에 다시 올라왔다. 무등산의 옆얼굴이 늘 궁금했었다. 거기에다 너릿재는 무등산국립공원의 범주에 속하는 곳이기에 이곳에서 드론을 높이 띄우면 정상까지 죽 산등성이 연결된 장엄한 모습을 관찰 할 수도 있겠다는 혼자만의 강한 추측이 들었었다. 그걸 확인해보고도 싶었다.

 

지금 드론은 화순에서 올라와 240m 너릿재 정상의 판치(板峙)를 빙 둘러본다. 좁고 비탈진 도로를 30분 정도 걸어 올라오면 넓고 평탄한 고개에 이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화장실도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이래 빵빵해진 예산 덕인지 무방류 비수거의 친환경 화장실로 바뀐 지 오래다.

 

세종 때 전라도관찰사와 판서를 지낸 성임(成任)이 광주를 짧게 칭송한 한시의 일부가 시비로 우뚝 서서 600년을 노래하고 있다.

 

光山은 형세가 뛰어나 아름다운 곳

옛날을 생각하는 듯 悠然하여라

라 일컬은 건 어느 때였을까

光州로 승격된 그 해를 묻노라

산천은 빼어나 한도(一道)에 웅장하고

풍성한 民物 가운데 어진 이가 많아라

서쪽 마루 끝이 넓음을 깨닫고

높은 누에 올라 짧은 글로 칭송하노라

 

과거엔 광주 쪽의 제2수원지 못미처에 있는 주차장에서부터 출발하면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1년 전 어느 날, 그곳 진입로가 폐쇄되고 아파트 공사장으로 변해있었다. 부득이 거꾸로 화순 쪽의 소아르 미술관에서부터 시작되는 산책코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쑥국새 울음소리를 못 본지도 꽤 된 것 같다. ‘쑥국새 울음소리는 고인이 되신 주기운 은사님의 시비인데, 어느 날 무심결에 지나치다 그것을 발견하고 어찌 놀랐던지. 평소 은사님의 특유한 억양과 제스처가 늘 발길을 잡았었다. 그래서 가끔은 그곳까지 다시 내려가 보기도 했다. ‘느그들이 말이다잉, 살다보면 여그 무등산이 차암 그리워질 때가 많을 꺼여어

 

이젠 너릿재 명품 숲길을 설명해주는 안내석이다. 너릿재 명명의 유래, 숱한 애환과 역사를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광주로 가는 전라도 동부의 유일한 통로였으니 조선시대 등용문이었던 신진사대부들의 과거보러 가는 길, 기묘사화 조광조 유배길, 동학농민군의 집단학살에서부터 화순탄광 노동자들 유혈사태를 맞았던 슬픈 역사 등을 거쳐 오랜 세월의 굴곡과 아픔을 딛고 자연스럽게 조성된 옛길이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명품 숲길이 되었다. 트래킹 족들의 휴식을 위해 마련한 공간은 딱 당시의 주막 정도와 엇비슷한 규모가 아니었을까, 하고 상상을 해본다. 굽은 비탈길을 오가며 지친 과객들이 허기진 몸과 마음을 달래려 주모를 불러 청했던 국밥 한 그릇과 막걸리 한 사발. 한 때 성업 중이던 주막의 왁자지껄 모습이 잠시 오버랩되며 머리를 스친다. 그러는 사이 드론이 다시 갈 길을 재촉한다. 오른쪽 샛길이 바로 수레바위, 만연산을 거쳐 용추폭포, 중머리재, 장불재와 서석대로 연결되는 무등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코스가 아니던가.

 

다시 올라왔던 화순 쪽 길을 따라 멀리 화순 읍의 풍경과 능주, 벌교가 아스라이 높고 낮은 구릉과 평야, 호수와 하천을 따라 넓게 펼쳐진다. 저쪽은 과거 한참 골프를 즐길 때, 그리고 낚시에 빠져있을 때 주말마다 누비고 다니던 산야라 눈을 감아도 즐거운 추억을 되뇌듯 코끝에서부터 먼저 후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지금은 둘 다 그만 둔지 오래다. 골프는 한 때 즐겼으나 게임처럼 묘한 중독성의 폐해에 빠져 오랜 우정에 금이 가는 아픔을 겪고 바로 손절해버렸다. 낚시는 골프로 인해 공백 기간이 길었던 취미활동이다. 따라서 중층낚시니 루어, 바다낚시 장비 등 환경과 기술발전의 변화가 그간 상전벽해가 되었다. 그러니 우선 장비에서부터 나의 허접한 과거를 버리고 감히 새 낚싯대 채비를 다시 갖출 엄두를 못 내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 다시 시작할 생각도 많다.

 

이제 오늘의 숙제를 할 때가 됐다. 드론의 기수를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려나가자 광주로 향하는 도로 저 편에 광역시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난다. 단순한 150만의 인구가 모여 사는 곳이 아니다. 호남인의 줏대를 세우고 맛과 멋의 문화를 계승, 창조해나갈 에너지가 용암처럼 녹아 흐르는 고장이다. 천천히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니 이곳 너릿재로부터 이어진 산의 능선들이 차례로 도열하며 구불구불 불규칙 곡선의 향연이다. 고도를 더 내려 자세히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그러다 드론을 잃을 것만 같아 얼추 감으로만 어림해본다. 방향은 확실히 잡았으니 아마도 맞을 것이다. 수레바위가 나오고 만연산 갈림길에서 용추폭포로 튀어 올라 서인봉과 중머리재까지는 허위허위 찾은 것 같았다. 그 위가 장불재인데 옆구리 방향이라 얼른 확인이 안 될뿐더러, 아뿔사. 무등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다. 방향을 잘못 잡았나, 주변의 우뚝 솟은 산봉우리를 다시 둘러봐도 여기가 무등은 분명 맞다. 할 수 없어 8.5배로 줌인을 해보니 장불재 위로 거대한 구름이 덮고 있었다. 구름이 내 숙제를 망친 셈이다. 난 구름을 밀어내고 평소의 무등산 정상을 가만히 올려보았다. 그래야 무등이다.

 

못내 아쉬워 다시 화순으로 난 도로를 비춘다. 빙글빙글 돌리다 주차장이 있는 소아르미술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난 번 갔을 땐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었다. 미술대학 교수가 사비를 들여 조성한 갤러리이자 레스토랑인데, 경내에 배치된 조형물들이 수준급이었다. 아마도 오래된 조형물 대신 신규 제작품으로 개편을 하고 있었던 듯했다. 허나 그땐 좀 실망했었다. 오만한 보폭으로 여행가방을 끌며 비행기 트랩을 올라가는 빨간 원피스의 젊은 여자가 퍽 인상적이었는데, 그걸 치우고 다른 걸로 바꾸고 있는 중이었다. 낯선 모습의 중년 신사인지 내 눈에는 도대체 왜 바꿀까, 이해되지 않는 작업에 부질없는 불만만 키우며 돌아온 적이 있었다. 하긴 이미 바뀌어버린 시대상과 겉도는 모습의 조형물이 사실 부담은 갔을 것이다. 나의 그런 추측이 맞다면 예의 그 빨간 원피스 여자는 아마도 지금 창고에 있을 것이다. 최근 내린 눈도 이젠 많이 녹았지만 그래도 그곳은 고요했다. 줌인을 하고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먼 거리라 희미했다. 고도를 내리고 좀 더 가깝게 접근할까, 했다가 주변만 이리저리 둘러보다 아직 덜 녹은 눈과 구별이 어려워 줌을 풀고 멍하니 있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옆얼굴을 보러갔다 옆구리만 구경하고 온 셈이다. (2023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