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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五友)

나에겐 오랜 옛 친구 오우(五友)가 있다. 정확히는 六友가 맞지만 한 친구는 오래전에 연락두절이 되어 얼굴 못 본지 20 년도 넘었다. 그래 다섯 친구가 가끔 만난다. 난 중 2때부터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최근의 불시 만남에서 거론해본 결과, 내 메모리가 틀린 것으로 지적받고 교정한 바가 있다. 중 3때, 같은 반이 되었고 무슨 연유였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그 공통인자를 집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룹으로 몰려다니며 지금껏 55 년간 유지해왔다. 학창시절에야 한 울타리 안에 있으니 자연스레 모임을 유지해오다가도 사회생활의 범주가 다를 경우라면 먼발치 소식조차 감감해지는 것이 대체로 일반적인 교우관계인데, 우리는 전부 다른 분야에서 일을 했으면서도 띄엄띄엄 용케도 그 관계를 지속시켜 온 것이다. 자주 만난 것도 아니..

카테고리 없음 2022.12.26

무등산 설경

지난 며칠 전의 늦눈이자 첫눈의 무등산 설경 출사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난 후, 합스부르그전 관람을 위해 상경한 날부터 꼬박 이틀간 다시 눈이 내렸다. 연이어 서설이 되었다. 정말 축복처럼 내렸다. 난 오늘 지금의 드론 출사를 숨죽이며 기다렸고 드디어 성공했다. 줌으로 당겨본 정상의 흰 눈은 이제 다시 내 가슴에 깊이 각인될 것이다. 무등은 저렇게 늘 짙고 푸른 원시림과 햇빛에 반짝이는 흰 눈을 정상에 얹고서 호남인의 가슴 속 줏대를 만들고 꿈을 키우고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게 해왔다. 천왕봉, 지왕봉, 그리고 인왕봉의 세 능선을 따라 눈을 맞추며 인근의 눈부시게 찬란한 백설의 산야를 꼭꼭 눌러 눈에 담았다. 지산동 법원 뒷산과 무진고성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국민학교 저학년 때 가끔 찾아다니던 전망대..

카테고리 없음 2022.12.25

늦눈, 아쉬운 설경

마른 가을 끝, 바스락거리던 단풍도 다 지고 지독한 가뭄이 얼마나 계속되었나. 한 겨울이 되도록 추위만 더할 뿐, 제한급수와 절수 홍보방송이 눈과 귀를 괴롭히고 있는 요즈음, 마침내 눈이 내렸다. 첫눈인데 늦눈인데다 일어나 보니 瑞雪이 되었다. 오랜 가뭄 끝 단비 같으니 녹으면 빗물이 될 것이요, 메마른 대지를 적실 것이니 눈이면 어떠랴. 그런데 소복이도 많이 내렸다. 임인년말을 서설로 보내고 벅찬 계묘년의 시작을 기대해본다. 첫날은 많은 눈으로 차량이동이 힘들었고 햇빛이 비치기 시작한 어제 비로소, 인근의 산야를 탐색해봤으나 오후 되자 급속히 흐려져 기대한 만큼의 무등산 설경을 탐색하는데 실패해버렸다. 오늘에야 아침부터 맑은 하늘이 비치니 즐거운 마음으로 점심 후 가까운 사직 전망대로 향했다. 차량 통..

카테고리 없음 2022.12.21

잠깐의 그 시절로

역대급 태풍 「힌남노」가 할퀴고 지나간 피해가 적지 않지만 우리들 일상은 다시 반복되고 있다. 태고적부터 우리 주변의 모든 일상은 크던 작던 그렇고 그런 상처와 영광을 남기고 늘 그렇게 다시 시작했었다. 지난 번 강남 폭우에 이어 이번 포항 지하주차장 침수사고는 한 두 번쯤은 누구나 깊은 우려를 해왔던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또 그럴 것이다. 다만 그 불운이 자신에게는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엉터리 확률을 굳게 믿으면서 주변에서 외쳐대는 편향된 프로판간다에 휩쓸려 우둔한 유권자로 뿌리내린지 오래다. 그런지 모르는 건 아니다. 알아도 그러는 게 낫다. 주변과 다른 톤을 내면 이 땅에서는 온전하기가 어렵다. 개인의 모든 성향을 이분법적 정치사상으로 치환해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때 생각들 2022.09.09

제노사이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2014년 2월 20일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정권 교체 과정에서 러시아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크림 반도를 점령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크림 반도는 독립 선언 후 바로 러시아와 통합되었다. 이후 많은 국가들이 러시아와 크림반도에 대해 국제적 제재를 가하게 되었고 러시아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나토, NATO)의 확장, 우크라이나 영토 활용 등 제3의 국가가 간섭할 시 즉각 보복할 것이라고 맞섰다. 그러다 8년 후인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비무장, 돈바스 지역 내 러시아인 보호, 우크라이나의 NATO · UN 가입 저지 및 중립 유지"를 목표로 하는 군사 작전을 선언하며 전면적인 침공을 개시했다. 이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

카테고리 없음 2022.05.11

까치설과 음력

설이라는 이름의 유례는 몇 가지 설(說)이 있지만, ‘새로 온 날이 낯설다’는 의미에서 그 어근인 ‘「설다」에서 왔다’로 보는 시각이 제일 우세하다. 그런 연유에서 일까. 우리는 연말 한 해를 보내면서 적극적인 의미가 내포된 「송년(送年)」이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아쉬움을 표출한 반면에, 해가 바뀌는 새 해에 대해서는 이에 걸맞은「영접(迎接)」이란 표현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다만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사자성어가 예부터 내려 올 뿐이다. 아마도 과거의 일에 대해서는 취사선택하여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분한 적극적 의미를 보이면서도, 어차피 도래할 미래에 대해서는 낯설지만 간구하는 자세와 함께 경건한 태도를 견지해야만 한다는 숨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듯 음력설을 쇠는 우리의 풍속에 설이라는 ..

카테고리 없음 2022.05.11

공감

언제부터인가 정부 발간지 「공감」 이 집에 배달되기 시작했는데, 이번 것을 보니 정권은 분명히 교체될 것 같다는 심증이 확실해졌다. 「공감」 은 얼마 전 있었던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편집되어 있었다. 당연히 당시 사진이 표지로 올라왔고 큼직한 대통령 사진도 함께 확대되어 있었다. 근데, 그 표지 한 중심에 ‘2021 국민과의 대화, 일상으로’가 눈길을 끌었다. 그 직후, 오미크론이라는 강력한 변이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발표되었다. 바로 이삼일 전이다. 일본은 재빠르게 외국인 입국 금지를 선언했고 지구촌 많은 나라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무서운 바이러스의 출현에 풀었던 빗장을 다시 걸고 있다. 그런 판국에, ‘일상으로’라니! 그렇게 편집했더라도 신속히 대응..

카테고리 없음 2022.05.11

쩨쩨한 말다툼

오늘 시간 어때? 화실 한 번 갔다 올까? 그래? 내가 몇 시까지 가면 돼? 중간에 점심 먹고 가게. 그럼 내가 11시까지 갈게. 그래, 와서 전화 해. 우리는 코로나 시국에도 거의 한두 달 터울로 만나 안부를 확인하며 식사도 같이 했다. 가끔 사소한 말다툼으로 어정쩡하게 헤어졌고 웬만큼 날짜가 갔다싶으면 아무 일 없었단 듯이 연락해서 또 그렇게 만나곤 했다. 코로나 팬데믹 발생 이전이었다. 수도 강남에서부터 시작된 부동산 시세 폭등은 온 국토를 투기장으로 만들었고 많은 젊은이들이 한 채의 집 장만을 위해 ‘영끌’에 골몰했다. ‘갭투자’ 역시 싼 이자덕분에 너나 할 것 없이 유행처럼 번졌지만, 무엇보다도 LH 직원들이 벌인 투기가 큰 역할을 했다. 그들은 개발정보를 이용해 집단으로 신도시 투기를 했고 그..

카테고리 없음 2022.05.11

운주사 돌부처

또 왔구나! 오늘은 확실히 아는 체를 한다, 수십 번의 질문에도 응답은커녕 나의 메아리도 없는 공허함. 우리는 이런 대화를 꽤 오래 이어 오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 간 의사소통 가운데 언어적 대화는 7%밖에 안 된다. 눈빛과 표정을 비롯한 무수한 바디 랭귀지가 소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거다. 하지만 우리는 바디 랭귀지조차 없었다. 이렇다 할 언어는 물론, 소리도 표정도 눈빛도 없이 통하는 대화. 우리는 40년이 넘게 그런 소통을 해오고 있다. 그의 아는 체를 흘리려는 듯 나의 오랜 침묵이 흘렀다. 앉았던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한층 가까워진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비로소 나는 오랜 침묵을 깨고 벼르던 얘길 소리 없이 하고 말았다. 코는 왜 그리 깨져 있는 거야? 오래 전부터의 질문이었다. 하지..

카테고리 없음 2022.05.11

어깨

어깨는 신체활동 중 어떤 부분에 특화되어 있을까? 사전으로 그 뜻을 정의해보자. 어깨는 목의 아래 끝에서 팔의 위 끝에 이르는 부분을 통칭한다. 다른 동물들의 경우, 짐승의 앞다리나 새의 날개가 붙은 윗부분이 바로 우리의 어깨와 역할이 같다. 우리 몸의 많은 부분들이 속된 표현과 곧잘 어울리기도 하는데, 어깨는 힘이나 폭력 따위를 일삼는 불량배를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양손을 중요하게 사용하기 시작했고 멀리 볼 수 있게 되었다. 수렵 채집의 시절, 상대를 맞닥뜨렸을 때 가장 먼저 경계의 시선을 집중하는 곳이 어디였을까? 무기의 유무와 신체조건 아니었을까? 떡 벌어진 상대의 어깨를 보고 전투 의지를 불태울 수는 없었을 게다. 인류의 역사가 거듭되고 우람한 어깨만이 강자라는 등..

카테고리 없음 2022.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