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생각들

잠깐의 그 시절로

늦깎이1 2022. 9. 9. 11:44

역대급 태풍 「힌남노」가 할퀴고 지나간 피해가 적지 않지만 우리들 일상은 다시 반복되고 있다. 태고적부터 우리 주변의 모든 일상은 크던 작던 그렇고 그런 상처와 영광을 남기고 늘 그렇게 다시 시작했었다. 지난 번 강남 폭우에 이어 이번 포항 지하주차장 침수사고는 한 두 번쯤은 누구나 깊은 우려를 해왔던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또 그럴 것이다. 다만 그 불운이 자신에게는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엉터리 확률을 굳게 믿으면서 주변에서 외쳐대는 편향된 프로판간다에 휩쓸려 우둔한 유권자로 뿌리내린지 오래다. 그런지 모르는 건 아니다. 알아도 그러는 게 낫다. 주변과 다른 톤을 내면 이 땅에서는 온전하기가 어렵다. 개인의 모든 성향을 이분법적 정치사상으로 치환해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측은지심의 마음만 천지에 가득하다.    

 

갑작스러운 새벽 냉기와 달리 여전한 한낮 더운 바람이 이른 가을 하늘을 펼치고 있다. 바람은 차나 햇볕은 아직 더운 기를 내뿜는다. 굳이 '장광의 골 붉은 감잎' 날아오는 것을 보고 낼 모레 닥칠 추석 걱정 했던 영랑 누이의 마음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올해는 빨라진 음력만큼 이르게 다가온 추석으로 온 국민들의 근심걱정이 조바심처럼 숨가쁘다. 코로나 이후 풀린 돈으로 높아진 금리에 고물가, 그리고 고환율까지. 앞으로 닥칠 스테그플레이션은 어떤 모습일지 깜깜한 터널 속 질곡으로 이어질까 아득한 심연의 공포를 느낀다.

 

드론을 챙겨들었다. 암울한 생각을 창공에 날려버리고 '떴다 떴다 비행기'로 시원한 전환을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이어령은 이 동요를 어느 대학의 입학식에서 거론하며, 이제 떴으니 창공을 훨훨 날아라고 대학의 새내기들에게 축하와 함께 멋진 비전을 제시했다지 않은가. 참으로 절묘한 해석과 적절한 비유였을 듯싶다. 우리 동요에 전해져온 그 노래의 가사는 분명히 '이제 떠올랐으나, 날고 있지 않으니 날아라, 날아라'고 '하늘 높이 나는 우리 비행기'를 목표로 제시하며 재촉하기까지 했으니 이 얼마나 멋지고 시의적절한 축사인가.

 

불로동에서 나고 자라 금동으로 이사와 십대 태반을 거기서 보냈으니, 어린 시절의 꿈과 희망, 성장과 좌절, 온갖 희노애락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땐 광주천에서 멱을 감고 고기도 잡았다. 해질녘 붉은 태양이 노랗게 변하며 주변 하늘을 오묘하게 채색하는 것에 경이로움이 더해 깨금발로 자갈 위를 올라서다 머리가 깨지는 사고도 있었지만 당시의 아픔은 온데간데 없이 머리 속엔 뭉클한 옛추억만 안온하다. 사직공원과 광주공원의 산과 들로 또래들과 함께 쏘다니며 벌이던 대숲 속의 단초싸움, 딱지치기, 구슬치기, 말뚝박기, 땅따먹기... 얼핏 봤던 양림동 풍장터의 음습한 기운 속 흰 옷 무리들. 한동안 새벽녘 가위눌린 꿈에 애닳아 하시던 수심 가득한 엄마 얼굴. '로케'를 외치며 내달리던 대나무 스케이트. 우리들 키로 닿을듯 말듯한 고목들 어두운 부위를 더듬으면 어김없이 우글거리던 핀둥이 무리들. 한 웅큼 쥐어 병 속에 틀어 넣고 오지게 차오른 마음에 냅다 달리던 사직공원의 참나무 숲. 모두들 그 숲 속을 뒹굴며 꿈을 키웠다. 엄마들이 저녁밥 먹어라고 하나 둘 데려가고나면 안간힘으로 끝까지 못 들은 채하며 피했던 치기어린 시절, 그 기억들. 그런 옛추억을 떠올릴 사직공원 전망대로 향했다.

 

'10월 1일 재개장'이라는 팻말이 전망대 입구를 막고 있었다. 일순, 낭패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예서 말 수는 없다. 주변의 공간배치를 확인하고 적절한 장소를 확보해서 드론을 조립했다. 여기에서부터 천천히 조망하고 추억의 나래를 펼치면 될 일이다.

 

우선 고도를 높혀 주변을 탐색하고 국궁장으로 향했다. 먼발치에서 흘끔 지나치곤 했던 관덕정. 사대에는 청소하는 이만 외롭다. 천천히 사대를 조망해보고 양림동을 날아 올라 신학대 인근의 미술관과 절대고독을 음미했던 다형 산책길을 따라 내려가니 사직도서관과 양인제과가 보인다. 그쯤해서 다시 날아오르니 광주천길이 보인다. 그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시간이 얼마나 많았던고. 길을 따라 눈을 주어 자세히 확인하니 금동 옛집 주변이 나오고 지워졌던 내 발자욱 따라 올라가니 양림파출소 입구로 사직공원 오르막이 보인다. 거기서부턴 눈을 감아도 선한 길. 로케~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다시 사직전망대 위에서 시내 전경을 확인하러 드론 호버링. 저 멀리서 무등산과 조대 건물이 선명하다. (20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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