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끄뜹 미나르

늦깎이1 2022. 5. 9. 11:56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마침내 WHO가 코로나 바이러스-19를 팬데믹 현상으로 규정했다. 시간이 갈수록 인류가 정체모를 대상과 전쟁을 하고 있으며 인류는 점점 더 힘든 국면을 맞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끔 찾아오는 간헐적인 악몽 사이에서 의미 없는 죽음도 찾아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제였다. 악몽은 늘 두려움과 공포를 몰고 왔다. 왜 죽음은 공포를 동반하나. 거부하면 두려운 거고 받아들이면 그렇지 않은 법이다.

 

10여 년 전 중국에서의 큰 수술을 앞두고는 내 자신이 던지는 스스로의 통렬한 비난이 더 크게 자리 잡았다. 그때도 공포는 있었지만, 무책임했던 과거를 더 책망했다. 죽음을 생각하니 제일 힘든 것이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이었다. 비로소 나의 무책임을 알게 된 것이다. 비난으로부터 시작된 진심어린 반성을 하고 나니 죽음 따위도 쉽게 받아들였다. 억울한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그 문턱에서의 온갖 갈등을 경험했던 내가 여기 인도에서는 사뭇 다른 생각이 많다.

 

여기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는다는 가정은 상상할 수가 없다. 억울하다. 누구나 한 번 찾아오는 죽음 앞에서 과거와 현재의 그것은 서로 다른 실체를 갖고 있는 것일까. 진지하게 고민해봤던 죽음에 대한 망각일지 삶에 대한 애착일지.

 

전례 없는 일은 이처럼 누구나 예측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전 세계가 백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재단에서는, 1차 우선 귀국 신청 제도를 마련하여 나 같은 사람에게 선택의 기회를 열어 주었지만 난 그 끈을 잡지 않았다. 그게 썩은 동앗줄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나름대로의 판단이 있었다. 사람들로 혼잡스러울 공항. 시행 초기라 아직까지는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공항의 무방비와 무질서. 탑승하고 나면 밀폐된 기내, 그리고 장시간의 여행. 면역억제제를 상복하고 있는 나에게 얼마나 위험한 곳이 될 수 있을까? 그것 또한 누구도 모르는 현실이다.

 

인도는 내가 당초에 배정받은 나라가 아니었지만, 신비로운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이곳이 가져다주는 기대감은 나의 짧지 않을 체류 기간 동안의 많은 상상력을 부추겨 주었다. 좀 더 이곳 생활이 익숙해지면 보다 좋은 환경과 날씨를 선사할 뭄바이와 캘커타, 그리고 시원한 히말라야 근처 나갈랜드 등지로의 멋진 여행을 꿈꾸며 뉴델리의 古城만을 탐색하는 여유를 부렸지. 그러다 어느 날 팬데믹 발표나기 직전, 인도 관관청에 근무하는 인도인 제자의 안내에 떠밀려서 갔던 타지마할이 아니었던들 여기 온지 거의 1년이 다되도록 도대체 뭐하고 지냈었냐는 조롱을 면치 못할 뻔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는 그날 그렇게 다녀 올 수 있었던 순간의 결정을 지금도 다행스럽게 기억한다.

 

처음으로 갔던 꾸뜹 미나르는 인도 최초의 이슬람 모스크이자 무덤. 토착 힌두족과의 승전 기념으로 100년간이나 쌓아 올렸던 붉은 사암 첨탑. 그들의 성긴 핏줄처럼 꿈틀거리던 코란 부조들을 돌아보며 그날의 뜨거운 함성을 나는 들었다. 후마윤스 툼과 레드 포트도 무굴 제국의 영광을 대표적으로 표현한 유적지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이렇게 오랜 기간 종교가 다른 민족들끼리 서로 뺏고 뺏기며 오랜 역사를 면면히 이어왔다. 인도의 역사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전역을 통일한 단일 국가는 원래부터 없었다. 수많은 다수 민족들끼리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를 유지한 채 무력을 매개로 한 이합집산에 따라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다시 결합하는 그런 정도였던 것을, 영국이 오히려 200년간을 통일 국가로 유지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는 또 이렇게 현대에 와선, 파키스탄과의 힘든 갈등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새벽부터 두런두런 소리와 인기척으로 잠을 깨보니, Garbage man이 출입구 문에 기대어 앉아 동료인 듯 다른 몇과 함께 인도인 특유의 빠르고 강한 힌디어를 큰 소리로 지껄이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간은 잠결에 뭉개며 기다리고 있었으나 저들의 그런 소요는 한동안 그치지 않았다.

 

아침부터 뜨거운 열기가 이 한 칸 삶터로 몰려든다. 확인해보니 37. 바깥 공기가 벌써 체온보다 높아진 것이다. 저들은 이 열기를 어떻게 견뎌내며 살고 있는가. 출입문 다음 한 평 남짓 공간을 막아 나의 이 삶터에 다소간의 아늑함을 보탤 수 있다면, 하여 Landlady에게 말해보았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이해할 수 없는 말로 거절을 했다. 인도에서는 그런 일이 다반사다. 그들은 나의 샤워기 설치 요청도 그렇게 무난히 지나쳤지. 한 평 공간의 범퍼가 있었더라면 저들의 새벽 담소도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저들의 그런 소요에 더 이상의 인내를 유지하지 못하고 벌컥 문을 열어 재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다 그만 두었다. 그리고 조용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오랜 침묵을 깼다. 에어컨 스위치를 눌렀다. 저들 옆의 실외기가 힘찬 소리를 내며 돌기 시작했다. (202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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