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살림 장만

늦깎이1 2022. 5. 9. 11:53

세라젬은 도심에서 떨어진 신도시 공단 쪽에 위치해 있었다. 고속도로를 경유해야 했으므로 이른 아침 35분 정도 되니 도착했다. 영어와 한국어를 절반씩 섞어야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자음과 모음 즉, 예비 편부터 다시 해야 할 정도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국어에 가장 많이 출현하는 연음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니 발음이 엉망이었고 그런 발음 습관으로는 말하는 것도 느리고 hearing도 어려웠다. 수업이 끝나고 팀장 면담이 있어 사실대로 얘기하니 난감해한다. 내가 3번째 선생님이란다. 한국어 공부 시작 1년 만에. 왜 그런 습관이 들게 되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예비 편부터 다시 할 생각은 없다. 그들도 자존심이 있을 테니까.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인도의 끔직한 교통 상황을 그대로 대변해주었다. 신호등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고속도로와 일반도로가 만나는 지점이 여럿 있었고 그 때마다, 길을 건너는 사람과 차 등이 경쟁하듯이 horn을 울려대며 자신의 진행 방향만 고집하는 모습이었다. 릭샤에서부터 택시, 버스, 트럭 등이 제각기 horn을 울리니 도로는 순식간에 관악기들이 내는 불규칙한 조율음처럼 온갖 소음으로 꽉 차올랐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누군가 오보에 A음을 넣고 시작한 tuning이 신호가 되어 엄청난 불협화음을 내는 오케스트라처럼 아우성으로 혼란스러웠다. 황망한 길거리 오케스트라의 조율음은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넓은 8차선 고속도로가 금방 20차선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엉켰던 도로가 얼마 안 있어 금방 풀렸다. 마치 처음부터 프로그램 되었던 시스템처럼 혼란한 도로 현상은 얽혔다 풀리는 것을 구간마다 자연스럽게 반복했다. 한국 같으면 이런 정도의 정체라면 교통경찰이 출동해서 현란한 수신호 통제를 가미해야만 풀릴 수 있을 테지만, 여기선 매일 벌어지는 이런 상황에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여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신기하게도 풀어지곤 했다. 마치 이곳의 오랜 신분제도인 카스트처럼 말이지. 그들은 얼굴만 봐도 서로가 어떤 신분인지 금방 알고 모든 크고 작은 분쟁에도 손쉽게, 교통정리가 된다하지 않은가.

 

인도의 지명엔 유독 콜로니(colony)가 많다. 이 역시 오랜 영국의 식민지 통치 영향이리라. 그들이 인도에 건너와 살게 되면서 초기 거류지 형태로 명명하고 그들이 물러 난 이후에도 여전히 인도의 동네 이름으로 불러지고 있다. 우리가 아는 ‘colony=식민지라는 등식보다는, 주변에 사는 인도인들과 구분하기 위해 영국 여왕의 이름으로 특별히 보호해야 하는 영국 국민이 사는 동네라는 의미로 불러진 표현이 바로 콜로니이다. 그러니 특별한 저항 없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별의 주체와 객체 중 어느 쪽 시각이었는지에 따라서, 그 피해의식의 차이를 역사적으로 증명한 셈이다. 일본은 우리를 조센징으로 차별했다. 한국의 지명엔 현재 일본의 어떤 지명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없다.

 

미리 침대 시트와 이불을 사놔야 바쁜 이삿날 밤 침대 위에서 잠을 잘 수 있겠다싶어 마침 집 주변이 시장이고 해서 지리도 익힐 겸 몇 군데 돌았다. 해외 출장이 많아, 짐 꾸리는 것하고 잠자는 것은 나름대로의 일정한 원칙이 있었다. 젊은 시절, 출장 일정을 지점에 통보하면 일반적으로 출장비에서 좀 여유 있는 수준의 호텔에다 부킹을 하는 관행이 있었다. 그런 관행을 깨고 부장 시절부터는 출장비를 꽉 채운 좋은 호텔 투숙을 지점 담당자에게 별도로 부탁해왔었다. 그것은 아마도 하루 종일 고생한 몸과 마음의 피로를 보다 안락한 곳에서 풀어야 한다는 자신에 대한 암묵간의 약속이었던 듯하다. 그런 습관이 지금 내게 이런 형태로, 이사한 첫날밤의 시트와 이불 구입을 독촉하고 있는 것이다. 맘에 드는 시트가 없어 시장 주변에 있는 가게에서 주방 용품과 청소용품 그리고 그릇 파는 가게를 확인한 후, 전문 시장에 가서 은은한 분홍빛으로 골라 샀다. 이제 최소한은 준비했다. 최초로 마련한 인도의 내 집에서 비로소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날마다 새로운 일이 어디 있으랴.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평범한 생활이 바로 인생이다.

 

인도인에게 외국인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집을 구할 때, 식당에 갔을 때, 그리고 오늘 오토 릭샤를 타고 요금을 냈을 때 나는 같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거리라 손에 물건을 들고 걸어올 일이 심란하여 오토 릭샤를 잡아탔다. 알렘이 미리 흥정한 정한 요금인 줄 알고 내가 100루피를 냈는데 그 녀석은 50루피밖에 거슬러주지 않는 것이었다. 알렘이 항의했지만 막무가내로 버티는 것이었다. 동전 몇 닢으로 막아 보려 애를 쓴다. 외국인이 준 돈은 자신에게 권한이 있다는 투다. 할 수 없이 알렘이 100루피를 빼앗아 내게 주고 새로 20루피를 주니 어쩔 수 없이 인정했다. 그들은 이처럼 이상한 계산법을 적용하며 외국인을 상대하는 것이다. 자꾸 반복되니, 인도인은 으레 그러려니, 하는 인식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이사 후의 일상 중 적절한 휴식과 걷기 등의 운동을 위해 미리 장소를 물색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 맵에서 Amar Colony의 가장 큰 공원을 찾았더니 타고르 국제학교 옆에 Sapna Park가 눈에 들어왔다. 직접 가서 걸어 보니 다른 조그만 공원과는 달리 우선 운동 거리상으로는 괜찮은 것 같았다. 1km 남짓 될까? 한국에서의 개념과는 좀 다르지만 이들은 거주지 주변의 자잘한 공간에 작은 초지를 조성하고 공원이라 명명하면서 주민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 같았다. 영국인들이 조성해 사용하다 남기고 간 공원을 인도 정부와 국민들이 이런 정도로밖에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주변이 온통 더럽고 무질서하며 시끄러운 이곳은 그래도 여전히 공원이다. 공원은 통상 시민들의 휴식처로만 알고 있던 나는 여기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잠시 주변의 혼란한 환경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일한 피난처임에 틀림없다.

 

너무 많다싶은 새까만 쥐와 다람쥐가 공원 안에서 공생하며 제법 수령이 오랜 수목들은 보이지만 쓰러져 방치된 지 오래된 썩은 나무 등걸들이 가끔 발에 채는 공원. 화려한 열대 화초들을 기대했지만 아무렇게 자란 수목들 사이로 가끔 발견되는 플루 메리아. 인도에서 가장 흔한 꽃이다. 길 가다 풍기는 향긋한 냄새 덕분에 알게 된 이 꽃만이 인도 공원의 악취를 중화할 뿐이다. 그들의 통로임에 틀림없는 구멍들 사이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큰 쥐들도 길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소들을 닮아 천하태평 행보를 즐긴다. 새들도 편안한 곳, 몇 군데로 분산해 뿌려놓은 곡류더미 주변에는 다양한 새들이 여유와 평화를 즐긴다.

 

내 눈에 비친 인도는 사람의 생활만 힘들뿐, 온갖 동물은 낙원이 따로 없다. 이 쯤 되면 우리가 느끼는 안락의 기준이 어디인지 불분명해 보인다. 그들은 사람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에 대해 특별한 차등을 두지 않아 보인다. 사람도 죽으면 조류나 설치류와도 그 생을 공유한다는 윤회사상 때문일까. 인도로 이민 간 어느 가정. 더운 여름날, 집 안에 들어 온 모기 한 마리를 쫓다 드디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야무지게 처리해버린 시어머니. 그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보던 이웃 집 인도여자가 아연실색, 질겁했다는 얘기는 그들의 생명에 대한 인식을 대변해주는 오래된 한인 사회의 경구이다. 인도인은 하찮은 동물에까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실천하는 민족이다. (2019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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