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수업2

늦깎이1 2022. 5. 9. 12:02

내 수업이 어렵다며 주말반의 한 학생이 반을 바꿔주거나 수업료 환불을 요청해왔다.

 

문화원에서는 내부 결정을 거쳐 환불해주기로 했다며 내게 관련 이메일을 보내왔다. 전화 한 통 없이 메일 하나가 비수처럼 내 가슴으로 쑥 들어와 꽂힌 것이다. 전혀 협의되지 않은 결과를 이렇게 갑자기 통보받았다. 그렇게 첫 전갈을 받는 순간 무너져 내리는 자존심으로 많이 아팠지만 이내 추슬러야했다. 아픔만을 붙안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밤 10시 반이 넘는 순간에 우연히 확인한 메일을 두고 어떻게 해야 그 아득해진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인가. 당연히 잠을 이룰 수는 없었다. 사전 얘기가 없었다는 사실을 두고 이해하려고도 많이 노력했다. 이런 일이 물론 없지는 않았겠지. 어쩌면 많을지도 몰라. 그러니, 반을 바꾸는 대신 그런 원칙을 세웠겠지. 그건 여러 해를 운영해온 이곳 문화원의 노하우에 속하는 것일 테고, 자존심 구기는 이런 일에 후줄근해진 뒷덜미를 보이며 돌아서야했던 선생님들의 모습은 이곳 학당의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일 터.

 

뭐라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평소 그 학생이 어찌했다는 평가는 이 상황에 특별한 의미가 없을 것이다. 모든 게 변명으로 받아들여질 테니까. 학생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을 뿐이다. 수업 방식의 변화를 모색해보거나 좀 더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면 될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통보한 학당의 배려 없는 시스템만이 큰 상처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며칠 후 다시 또 이걸 번복하는 연락이 왔다. 이번엔 전화였다. 운영요원이 없으니 팀장이 직접 이런 일의 전부를 수행한다. 요즘 그분과는 서로 다른 생각 때문에 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이 나이에 누굴 미워하고 속상해하고 하는 짓은 않기로 굳게 마음먹은 바가 오래거늘, 최근 겪고 있는 일련의 연결고리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는 없다. 사람과의 관계는 항상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모든 게 반응과 대응의 연속이다. 그러니 결국은 내가 아무리 결백한 체해도 상대방이 힘들어한다면 내게 책임이 있음을 통감해야 한다. 하물며 상대방은 조직을 관리해야 하는 젊은 분이다. 내가 그를 다른 무엇으로 제압하려 한다면, 그건 안 될 일이다.

 

그 학생이 마음을 바꿔 용서를 빌며 다시 수업을 하기로 했단다.

 

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난 그 학생 이제 받을 수 없어. 아냐, 어른처럼 굴어야지. 한참을 고 민 했지만 쉽게 마음을 결정할 수 없었다. 짐짓, 학생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나를 달랬던 며칠 전의 미카엘이 얼굴을 바꿔 루시퍼의 모습을 하고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도 루시퍼의 자만에 도취된 착각이 왔던 것일까.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난 오랜 생각에서 벗어났다. 참고하라며 내게 relay된 학생의 메일을 보며 이제는 불가항력의 터널 속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메일을 보냈는데, 수업들이기를 거부한다면 그건 노인네의 민망한 고집에 불과할 것이다. 여기서 내릴 결론이란 매우 simple해야 할 것이다. 책임과 권한이 정해진 만큼 내가 바꿀 수 있는 시스템도 유한한데, 생각해보니 그럴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버려야지. 뭔가 잔뜩 쥐고 놓지 않는 게 많아서 그럴 거야. 그저 넉넉한 마음으로 돌아가 하나씩 헤아리며 버리면 된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인도인은 상상 이상이다. 대단한 열풍이다. 수업을 하다보면 중, 고등학생도 있다. 그 나이의 학생들이 관심을 보이는 다른 멋진 것들이 많을 텐데 그들이 열광하고 있는 한류만으로 한국어를 생각해낸 것일까? 물어보는 나의 질문이 너무 무색하다. 명쾌한 대답이 봉숭아 씨처럼 여기저기서 터져 오르고 오랫동안 귓가에 머문다. 그럼요. RM이 꿈에 나와요. 미칠 것 같아요. 미칠 것 같다는 표현은 드라마에서 배웠단다. RMBTS의 리더이고 본명이 김남준이란 사실도 그들이 알려 줬다. 25살이란 것마저도 꿰뚫고 있다. 유튜브로 검색하고 페북으로 채팅하는 그들이 누리는 세상은 일찍부터 온라인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들의 세상을 앞당긴 것이다.

 

한국어 학습수요가 많으니 당연히 시험을 봐서 걸러내야 한다. 보통 31 정도인데 요즘은 그 경쟁이 더 치열해진 느낌이다. 총리실 직원이 문화원에 압력을 넣어 자신의 딸 합격을 요구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처음에 왔을 때 문화원에는 300명 정도의 학생을 10명의 교사가 초, , 고급으로 나누어 지도했는데 도저히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현지 교사를 인도인으로 충당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이런 정도의 세종학당이 첸나이, 콜카타, 벵갈룰루 등 6군데가 더 운영 중이다. 국공립 대학교 수업료와 맞먹는 비용을 내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들은 그래서 웬만한 중산층 이상 생활수준의 아들딸들이다. 선진국의 타 세종학당이 점차 유료화를 늘려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 그 열기의 추세를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 열기는 내가 지금 행하고 있는 버킷 리스트 시도를 한낱 사치스런 행보로 희화화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숙연해진 마음에 멋 적어진 난 학생의 얼굴을 오버랩 시켜보면서 불현듯 거울 앞에서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201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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