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예측불허

늦깎이1 2022. 5. 9. 12:15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온 가장 중요한 파장 중의 하나는 예측불허일 듯싶다.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일은 예측불허이다. 인류가 수렵채집을 거두고 농경을 위해 본격적으로 집단 거주를 시작한 지 만 년 남짓. 모여 살다보니 자연스레 이루어진 온갖 토론과 협동을 통해 꾸준히 발전해왔고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과의 접목으로 빠른 속도의 기술혁신을 이루고 AI와 빅 데이터 기술, 그리고 사물 인터넷으로 응축된 4차 산업혁명으로 성큼 다가섰다고 떠들어 댄지가 바로 엊그제인데 우리는 그 빅 데이터 기술을 가지고도 예측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나의 이곳 생활 역시 예측불허의 사태에 직면한 것이다.

 

나의 인도 생활을 예측할 수 있는 척도가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는, 우선 건강과 안전이었고 지금도 역시 가장 중요한 factor로는 건강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변수를 가할 수 있는 것은 인도의 코로나바이러스 상황과 현재 내가 보유한 약의 분량이다. 그래서 한 달 전까지의 상황 점검으로는 내가 보유한 약으로 체류할 수 있는 9월 초까지는 특별기가 아닌 자유로운 비행기 편이 해결될 수 있겠다는 다소 의도적인 예측을 했었다. 그러던 사이 인도의 상황은 나날이 악화되어갔다. 확진자 증가 추이가 하루 15,000명을 넘기 시작했고 이곳 델리도 매일 이천 명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5월 예측한 수치의 배가 되었다. 미국, 브라질, 러시아에 이어 4위에 랭크되고 있는 숫자다. 브라질과 더불어 가장 가파른 곡선을 그리고 있는 나라, 인도. 13억이라는 인구, 그리고 내가 여기 와서 보고 겪은 이곳 인도.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빈민촌, 한국 전쟁이후 빛바랜 사진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광경을 현실로 목격하면서 말없이 눈을 감았던 얼마 전의 회상들. 처음 lockdown이 시작되고 일주일도 안 돼 줄을 이어 등장한 일용노동자들의 고향 향 exodus. 길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었던 수많은 거지들. 영국인들이 남기고 떠난 자리에 폐허처럼 방치하고 있는 무수한 공원들. 이제 다시 문을 연 일상생활 속 작은 가게들, 그리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사람들과 차량들. 아아, 이러면 안 되는데, 를 속으로만 외치며 안타까워하고 있던 즈음, 인도 생활의 터닝 포인트라 할 만한 계기가 찾아오면서 난 다시 이 예측불허의 행보를 이어나가야 했다.

 

이틀 전 교원 화상회의 참석자 명단에서 난 낯선 이름을 발견했다. 그녀는 지난 1월에 배치된 바 있으나 이후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로 국내에 발이 묶였었다. 인도 정부에 의해 기 발급된 비자가 취소되었으므로 아마도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발급받아 출국하겠거니 생각했으며 기억에서는 이미 사라진 이름이었다. 처음엔 인도로 입국한지 알았다. 알고 보니 온라인 수업이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파견교원 자격으로 지금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예측불허의 일이지 않은가. 퍼뜩 머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생각. 그래,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은가. 나는 즉시 문화원의 팀장과 상의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으며 다음 날 일사천리로 재단에 의견을 구했다.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미, Landlord에게는 나의 계획을 알렸으며 이제 귀국 편 비행기 공지가 뜨는 것만 기다리는 일뿐이다. 부디 7월 말이나 8월 초 출국 편이기를 고대하면서. 지금 진행하고 있는 학기가 8월 초에 끝나기 때문에 수업이 종료되는 7월 말이라면 난 특별한 민폐를 끼치지 않고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코트라 주관의 역 특별기 공지가 떴다. 710일 델리 출발이라니 좀 빠른 감은 있으나 이걸 반드시 잡아야 한다. 이번이 8차라는데. 모든 준비를 다했다. 토요일 9시부터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아 총 60석을 모집하고 종료한다니, 오전 9시부터 시작될 예정인 온라인 수업도 학생들에게 미리 공지하여 10시로 연기해둔 바 있다. 조금이라도 지연될 모든 소지를 없애기 위해 결재 정보를 보낼 이메일도 관련 내용을 다운로드하여 미리 임시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9시에 구글 링크가 뜸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신청, 이어 임시 메일함에 넣어둔 결재 정보 역시 재빨리 끄집어내어 발송 완료했다. 915분이었다. 네이버 밴드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930분경에 60석이 다 마감되었다는 공지가 떴다. 바로 확인할 수 없으니 답답해도 이제 30일까지 참고 기다리면 된다.

 

8차 특별기 탑승 최종 확인을 받았다. 티케팅은 빨라야 3-4일 전에야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니 nbms상 결제 상신도 그때 올리면 될 것이다. 이제는 집 관련 정리만 남았다. 오늘 알렘을 만나 landlord와의 정산에 대한 기본 사항을 얘기했다. 내가 남기고 간 모든 물건을 그녀가 떠맡아 정리한다고 하니 그렇게 고마울 데가 없다. 다시 한 번 더 감사할 뿐이다. 한 달분의 1/2을 떠날 때까지의 집세로 주고 아직 정산 전인 전기세와 security와의 대체 여부를 알렘이 신경을 써서 마무리를 해주기로 했다. 인터넷 요금 문제는 Ajay에게 7/10 떠난다고 해두었으니 그가 알아서 정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제 내가 7/10 마음 놓고 떠날 수 있도록 모든 정리가 다 이루어진 셈이다. 들어간 직후의 온라인 수업 관계도 미리 협의를 해둔 상태이니 계획대로만 움직이면 될 것이다.

 

오늘이 인도에서 하는 마지막 수업일이다. 가볍게 진행하고 학생들과 편한 얘기를 하며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모든 게 어긋나 버렸다. 중간에 인터넷 연결이 끊겨 라우터를 살폈더니 푸른 LED 불이 3개밖에 안 켜져 있다. 어딘가 연결이 안 되고 있다는 신호이다. 부랴부랴 학당으로 갈 채비를 위해 노트북을 접었다. 집밖으로 나오니 앞 큰 나무가 아무렇게나 잘려나간 채 쓰러져 있고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통신선들 중 몇 개가 끊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일의 순서나 공공의 우선순위를 전혀 고려치 않는 나라. 이런 일이 벌써 두 번째이다. 한심하다. 빨리 이 나라를 뜨고 싶은 마음이 새삼스럽게 폭풍처럼 휘몰아왔다. 속은 끓지 밖은 뜨거운 열대 더위, 그렇지만 난 뛰었다. 피하고 싶은 자리는 그렇게 박차고 뛰는 것이 맞다. 아무도 없는 일요일의 학당은 고요했다. 재빨리 에어컨을 켬과 동시에 인터넷 연결을 확인했다. 당연한 가동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수업 시작 불과 10분 만에 여기서도 정전이 다시 계속되었다. 안내에 통보한 후 30분 가까이 기다리니 다시 연결이 되어 무사히 마지막 수업을 마칠 수는 있었으나 계획과 틀어져 뭔가 찝찝한 느낌이 무겁게 남아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난 여기, 인도에서의 마지막 수업까지 다 해치웠다. 물론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온라인 수업으로 연결될 테지만, 여기 인도에서는 수업을, 어찌되었던 다 마쳤다. (20200630)

'인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쉬운 마무리  (0) 2022.05.10
아직은 이해 곤란한 나라  (0) 2022.05.10
더위  (0) 2022.05.09
시스템1  (0) 2022.05.09
수업2  (0) 2022.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