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아쉬운 마무리

늦깎이1 2022. 5. 10. 09:31

온라인이지만 시간이 가니 학기도 바뀌었다. 새 학기 즈음에 으레 맞는 이 기분. 우선 학생들이 궁금하고 지난 학기의 후회와 아쉬움을 딛고 새로 감당해야 할 각오와 다짐 그리고 적절한 나름의 원칙 같은 것들이 있다. 여기까지가 내가 겪었던 일반 사회의 학기 전 현상이다. 그러니 새 학기를 맞는 느낌은 늘 이렇게 새로운 각오와 희망, 그리고 기대가 절대적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르다. 가르쳐야 할 대상의 윤곽. 새 학기 시작 겨우 2주 전이라야만 나는 내가 전념해야할 수업의 범위를 더듬더듬 알 수 있다. 2주부터는 부리나케 수업 준비를 할 수 있다. 그 전에 그것을 묻는다면 경을 칠 노릇이 된다. 여기 온지 1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교원의 희망 사항조차 묻는 법이 없었다.

 

어찌하여 난 중급 주중반과 고급2 주중반을 맡게 되었다. 중급은 직전 학기에 수업을 했던 과목이었기 때문에 별도의 준비가 필요 없지만, 고급2는 새로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니 새 학기는 너무 힘들다. 거기에 가세한 무거운 숙제가 있다. 지난 학기 처음으로 zoom을 통해 온라인 수업을 했고, 이번 학기에 새로 도입된 트라우마가 하나 있다. 그게 바로 구글 클래스 룸이다. 지난 학기엔 평가가 문제였다. 지필고사를 치를 수 없어 쓰기와 말하기만으로 한 평가는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지필고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는데, 이를 무난히 수행할 도구로 선정한 것이 바로 구글 클래스 룸이다. 관련 내용에 대한 정보를 온라인 교사회의에서 공개하면서 각 교사는 이의 숙지를 위해 유튜브에서 공개된 정보를 더 열람해보고 개별적으로 연습해 볼 것을 권고했다. 난 생소한 구글 클래스 룸보다 우선 새로 부여된 나의 zoom 수업 코드의 가동 여부를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인도에서 사용했던 중급 zoom은 문제없었다. 과거에 계속 사용했고 여기 한국에 와서도 문제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고급2용으로 새로 부여받은 zoom은 인사부터 받지 않았다. 거부했다. 내게 계속해서 본인 인증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몇 번 시도하다 도저히 해결할 길이 없어 이를 팀장에게 카톡을 통해 문의했다. 이 때가 수업 10일 전이었다. 코스타비에게 확인하란 내용을 보고 전화, 카톡, WhatsUp, 수십 장의 사진 등을 주고받으며 4일 간 하루 3-4시간을 그녀와 씨름해봤지만 그날 본인 인증해결, 다음 날 또 본인 인증요구...반복되는 시스템 상의 오류였다. 하루에 오류 상한이 차면 시스템이 스톱되는 지 먹통이 될 때도 있었다. 도대체 팀장은 이런 사실을 아는 지, 하는 의문이 생겨 그 다음 날 교사회의 시에 이 문제를 거론했더니 박 선생님과의 3자 회의로 돌리더니 선생님은 오류 발생 후에도 수도 없이 입력해서 시스템에 큰 문제가 됐어요. 당분간 그 zoom 사용하지 마세요.’ 마치 내가 큰 실수를 했거나 시스템을 망가뜨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무안을 주는 통에 흐지부지 그날 나의 문제 제기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고선 끝이었다. 고급2 학생에게도 중급 zoom 코드로 수업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zoom만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트라우마, 구글 클래스 룸이 도사리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다른 사람들이 쓰는 수준까지는 숙지가 되어 연습문제 풀이 과정을 거쳐 real exam을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난, 할 말이 많다. 알려준 정보대로 할 경우 단계별로 여러 번의 주관적 망설임을 겪게 됨은 물론 중요한 사항의 누락이 많아서 이것저것 클릭해보다가 이건 가? 하고 지레짐작해야 하는 게 지금도 불쾌하다. 대체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각각의 지시문에 맞는 화면 제시를 병행해야 하는데 그런 법이 없었고, 교사에게는 채점 및 피드백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를 누락했으며 학생에게는 업로드하기 위한 올바른 방법과 절차 제시가 없었다. 교사들이 1차 연습 문제를 실시해보고 나서야 그런 문제점들을 인지하는 수준에 불과했음을 알고 너무나 큰 실망을 했다. 도대체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구글 클래스 룸을 소개하는 유튜브를 탐색하다보니, 대부분의 강사가 구글 드라이브 사용을 권장하고 있어서 직접 그걸 이용해보았다. 구글 드라이브의 장점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용량을 허용한다는 점과 학생이 시험 본 답안을 사진 찍어 다시 업로드 하는 그런 불편 없이 바로 문제지에 답안을 표기할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글 드라이브 얘기를 한 번 했는데 일언지하에 말문을 막아버렸다. 교사는 출제 문제를 PDF 파일로 변환해서 올리고 학생은 답안을 사진 찍어 다시 올리는 일을 한다. 우스운 일이다.

 

참으로 느낀 바가 많다. 평소 신조처럼 스스로 반문하던 변경점 관리라는 게 있다. 지금까지 잘 해왔는데 문제가 발생되었다면 그것은 분명 무언가 변경이 있었는데 그걸 놓쳤다는 얘기가 된다. 시점이 달랐거나, 과정을 생략했거나 쓸데없는 게 추가 되었거나, 아니면 숙달이 되지 않은 사람으로 바뀌었거나 혹은 재료가 바뀌었거나. 하물며 새로운 제도나 절차를 도입할 때는 어찌했던가.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했던 만반의 준비와 검토 그리고 사전 시뮬레이션을 난 기억한다. 지금 팀장이 하고 있는 일의 대부분은 과거 오프라인 시절에 매뉴얼로 만들었던 액션플랜의 routine 실시가 아니다. 온라인 수업은 전 세계 모든 조직과 기관이 경험하고 있는 일이다. 모든 일이 변경점 관리라는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하고 시행되어야 한다. 그가 오프라인의 모든 매뉴얼을 구축할 때처럼 겸손하고 세심한 준비 작업과 빈틈없는 사전 시뮬레이션으로 많은 사람들이 허둥대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을 써야 한다. 그걸 할 수 없다면 이제 그만 내려올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202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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