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월봉서원

늦깎이1 2023. 2. 16. 12:38

광주에서 광산 비아를 거쳐 황룡강을 끼고 장성 쪽으로 가다보면 廣谷마을이 나온다. ‘넓은 계곡이란 뜻 그대로 산 밑으로 전개되는 너른 평지에 강이 흐른다. 여기에 월봉서원이 자리한다. 광주가 낳은 조선 성리학의 대가 고봉 기대승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원래 비아의 망천사에 있던 위패를 인조 때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효종 때 월봉으로 사액되었다. 그러는 과정에 박상, 박순, 김장생과 김집 등이 추가 배향되었다. 월봉서원의 위세가 어땠는지 짐작된다. 기대승은 익히 아는 바처럼, 퇴계 이황과의 사단칠정을 주제로 한 편지 논변이 유명한 바, 이때 퇴계는 58, 그리고 고봉은 32세였다. 당시 조선 성리학의 대가였던 퇴계는 신예 고봉의 논박을 내치지 않았다. 예의를 갖춘 논리가 진정한 학자를 오히려 끌어들인 것이었다. 당대의 유학자들은 두 사람의 논변을 서로 베껴서 돌려가며 읽었다. 이는 조선 성리학의 사상적 기반을 이루며 더욱 탄탄해졌고 훗날 율곡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훼철되었다가, 강당격인 빙월당이 1938년 맨 먼저 다시 건립되었다. 정조가 고봉의 고결한 학덕을 상징하는 氷月雪月의 뜻으로 하사한 당호이다. 계단을 오르자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 펼쳐진다. 양측 1칸씩은 退間인데 전면과 우측 반 칸에는 툇마루를 설치했다. 안쪽으로는 후면 반 칸을 포함 좌측 2칸에 온돌방, 우측 3칸에는 우물마루를 깐 대청을 깔았다.//1978년에 새로 지은 장판각이다. 서원의 모든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서원의 서쪽 기숙사인 존성재이다. 자신을 성찰하란 뜻의 현판이 오늘날까지 후세들에게 경종을 준다.//아까 입장했던 출입문, 외삼문을 지나//서원의 또 다른 편 동쪽 기숙사인 명성재이다. 배움 중에도 밝은 덕을 밝히는데 성의를 다하라는 현판 역시 엄숙한 여운으로 우리 가슴을 파고든다.//전사각이란 명칭의 현판을 단 구장판각인데, 새로 짓고 나서 기존에 보관했던 자료들, 즉 고봉집 목판본 474판과 논사록, 주자문록 및 서원의 현판들을 모두 이관했던 탓에 지금은 건물만 외로이 남아있다. 1칸 맞배지붕이다.//빙월당 뒤편의 사당 숭덕사다. 먼저 정면 3칸 측면 1칸짜리 솟을삼문인 내삼문이 나오고 정안문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고봉의 위패를 향해 저절로 머리 숙이며 합장해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언젠가 가봤던 안동의 도산서원 경내를 짙게 내리 누르며 엄습해있던 무거운 분위기가 머릿속을 스치며 떠나질 않는다. 퇴계와 고봉의 인연이 그런 순간을 내게 감정이입했을까? 하지만 여긴 사락거리는 댓잎소리가 숲속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곳이다.

 

고봉 기대승은 주자대전 100여권을 완독한 후 28세에 주자문록이란 목록을 완성했다. 후학들은 주자문록을 통해 학습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당대 조선 성리학의 최고봉이었던 퇴계와의 사단칠정에 관한 논변으로 일약 유명해진 고봉은 많은 유학자들의 시기질투를 받았다. 예학으로 치우친 나머지 명분만을 중시해 현대의 우리가 극복해야 할 조선의 유교주의는 일단 차치해두고, 퇴계와 고봉이 나눈 사단칠정의 이기논변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의미한 금과옥조임에 틀림없다. 측은지심은 남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슬픔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며, 이는 어질 의 발로가 된다. 수오지심은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함은 물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며, 이는 의로울 의 원천이다. 사양지심은 남에게 양보하고 사양하는 겸손한 마음이며, 이는 예절 의 근원이다. 시비지심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며, 이는 지혜로울 의 근본이 된다. 사단은 이처럼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도덕적 가치이며 특히 선한 마음을 일으키는 단서가 된다 했고, 칠정은 모든 인간이 품는 감정으로서 이를 喜怒愛懼哀惡慾으로 구분하였다. 이를 다시 인간의 심신을 통해 나타난 현상을 두고 사단은 , 칠정은 로 구분하여 퇴계는 이기이원론을 고봉은 이기일원론을 주장한 것이었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플라톤은 이데아와 현상을 구분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는 현상이 투영된 것일 뿐 현상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 후 역시 변증법과 실존주의를 논하며 본질과 현상의 실체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을 해왔다. 인간은 이렇듯 동서고금을 통해서 유의미한 생각을 공유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2023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