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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박물관

늦깎이1 2022. 12. 31. 00:14

미암박물관을 찾았다. 몇 해 전, 친구 따라 왔다가 미암이라는 명칭에서부터 아담하지만 정갈하게 관리되어지고 있던 박물관의 외형적인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허난설헌, 황진이, 매창과 더불어 조선 4대 여류시인으로 알려진 미암 유희춘의 아내 송덕봉의 예사롭지 못한 구절의 시비가 눈길을 끌었는데, 당시엔 다른 일정에 쫓겨 아쉬움만 잔뜩 안고 다음을 기약했었다. 그러던 게 오늘에야 날이 되었다.

 

미암 유희춘은 해남 사람으로 전라도 관찰사와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을사사화 때, 제주도와 종성에 19년간의 유배생활을 하다 선조 즉위와 함께 해배되어 다시 등용되었다. 그때부터 기록했던 미암일기미암집 목판본이 국가문화재 보물 260호로 지정되어 오늘날 미암박물관으로서의 성가를 빛내고 있다. 내가 궁금했던 미암은 바로 유희춘의 고향 마을에 있는 바위이름에서 그의 호를 따왔다 한다. 당시 선조들의 작호명과는 그 결이 좀 다르고 발음에서 엿볼 수 있는 여성스러움에, 혹시 부인 송덕봉의 역할이 있었지 않나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박물관 입구에 웬 시비가 서 있다. 천천히 줌인해보니 두 부부의 금슬 좋았던 생애를 대변하고 있는 화답시다. 흰 화강암에 까만 글씨로 남아 탐방객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園花爛慢不須觀   동산에 꽃 흐드러져도 보고 싶지 않고

絲竹铿鏘也等閑   음악 소리 쟁쟁 울려도 관심 없다네

好酒姸姿無興味   좋은 술 고운 자태엔 흥미가 없으니

眞腴惟在簡編間   오직 책 속에서나 참맛을 즐기려오

 

인생의 즐거움은 책밖에 없다고, 남편 유희춘이 운을 떼니

 

春風佳景古來觀   봄바람 좋은 경치는 예로부터 보던 것

月下彈琴亦一閑   달빛 아래서 타는 거문고도 한적하다네

酒又忘憂情浩浩   술 한 잔이면 시름 잊어 호탕해지는데

君何偏癖簡編間   당신은 어이해 책 속에만 빠져있나요

 

부인 송덕봉이 차음하여, 자랑인지 힐난인지, 같이 즐겨보는 게 어찌할까나, 유인하는 듯 하는 시가 떡 하니 입구에 서 있다.

 

두 부부가 이렇듯 당시의 엄격한 유교문화적 분위기를 깨고 화답한, 시비(詩碑)가 이채로울 지경이다. 박물관에 도대체 뭐가 있는지 도발적인 궁금증을 자아낸다. 빙 둘러본다. 전면엔 전시관인 모현관(慕賢館), 우측엔 체험관인 배근당(培根堂), 좌측엔 관장 거처인 달기당(達技堂), 그리고 모현관 옆엔 덕봉도서관이 자리해 있다. 최근의 서설로 이곳 미암박물관 주변은 온통 숫눈 천지라, 바닥은 하얀 백설 세상이다. 이곳 마당에도 관장의 외줄 발자국 외엔 숫눈으로 소복하다. 더구나 지금 난 드론으로 입장한 터, 내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고 다시 한 번 둘러보는 호사를 누린다.

 

미암일기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1592년 이전의 자료들이 소실되어 없어진 바람에 선조실록 편찬 시, 율곡의 경연일기와 고봉 기대승의 논사록 등과 함께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되었을 만큼 사료적 가치가 높다. 그런 의미에서 미암일기는 우리에게 조선 중기의 생활상을 생생히 전해주는 타임캡슐이라 할 수 있다. 유희춘 부부를 위시한 자녀, 일가친척 및 노비들의 생활상이 일기에 등장하니 그렇다 아니할 수 없다.

 

시비가 또 하나 보인다. 이번엔 누워있다. 잘 생긴 화강암에 까맣게 각인한 덕봉의 시가 있다. 윗부분은 아직 녹지 않은 잔설이 덮었지만 맥락으로 살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行行遂至磨天嶺  걷고 또 걸어 마천령에 이르니

東海無涯鏡面平  동해는 거울처럼 끝없이 펼쳐있구나

萬里婦人何事到  부인의 몸으로 만 리 길 어이 왔는가

三從義重一身經  삼종의리 중하니 이 한 몸 가벼운 것을

 

유희춘이 양재역(良才驛)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도 끄트머리인 종성에서 19년간 귀양살이할 때였다. 송덕봉은 시어머니 3년 상을 마치고 남편과 함께 살기 위해 종성을 향해 담양에서 만 리 길을 떠났다. 여러 날이 걸려 함경도 중간에 있는 마천령 고개에 이르러 송덕봉 자신의 회포를 읊은 시가 바로 마천령상음(磨天嶺上吟)이 시다. 당시 여인의 신분상 형벌과도 같았던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자신의 시에 감히 포함시킨 용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벌써 송덕봉의 글 속 어귀마다에서 샘솟듯이 흘러나오는 양성평등의 기치를 이미 발견했을 터. 그녀의 글은 삼종지도를 압도한다. 그러니 난 송덕봉의 이 시 마천령상음(磨天嶺上吟)이야말로 삼종지도를 초월한 부부애의 극치를 보여준 시라고 단언한다.

 

고도를 높여 석조 모현관과 종가가 위치한 호수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미암일기 등의 귀한 선조 유물을 잘 보관하기 위해 해방 후 화순 등에서 석조 자재를 들여다 인공호수를 조성하고 그 한 가운데 건축공사를 했는데, 나중에 다시 유물을 박물관 내의 모현관으로 옮긴 것이라 한다. 지금 현재의 석조 모현관은 텅 비어있다. 항온항습과 조명 등을 위한 고정비가 만만치 않게 소요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중으로 보관할 필요가 없어졌을 것이다. 자랑스러운 선조를 둔 후손들의 의기투합이 빚어낸 시행착오라고 해야 할까. 고도를 더 높이고 주위를 한 바퀴 돌자 호수 뒤편에 있던 종가와 사당이 빙그르르 돌며 나타난다. 종가는 현재도 사람이 살고 있는 듯 승용차 한 대와, 넓은 장독대의 크고 작은 독들이 반쯤 녹은 잔설을 등에 이고 고적한 이곳 미암박물관을 지키고 있다. (20221228)